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한 '변동불거'. 경기대학교 서예학과 장지훈 교수가 예서체로 썼다. 사진=교수신문
교수신문이 선정한 2025년 올해의 사자성어인 변동불거(變動不居)는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양일모 교수가 주역에서 가져온 말인데 생각할수록 심오함이 담겨있다.
양 교수는 추천 이유로 “대통령 탄핵, 조기대선, 정권교체, 여야의 극한 대립, 법정 공방, 고위 인사들의 위선과 배신을 목도했다”라며 “대외적으로는 미·중 신냉전, 세계 경제의 혼미, AI 혁신에 대한 기대와 불안 교차” 등을 들었다.
그러나 이러한 단순한 이유를 가지고 변동불거가 가지고 있는 깊은 의미를 대변하는 데는 한계가 있고, 드러내지 않은 속내가 있어 보인다.
지난해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도량발호(跳梁跋扈)로 정했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며칠 뒤여서 딱 들어맞는 사자성어였다. 도량은 ‘장자’에서 발호는 ‘후한서’에 나오는 말인데 이 두 단어를 조합한 말로서 살쾡이가 대들보 사이를 날뛰면서 사납게 굴다가 그물에 잡힌 물고기마냥 잡혀 죽는다는 의미였다.
올해의 사자성어인 변동불거는 주역 계사전 하편 8장에 나오는 부분인데, 주역에서 빌어왔다는 것 자체가 심상치 않고 해석 또한 다양할 수 있어서 누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역궁즉변 변즉통 통즉구, 변화자 진퇴지상아 변동불거, 주류육허 상하무상 강유상역 불가위전요 유변소적(易窮則變 變則通 通則久, 變化者 進退之象也 變動不居, 周流六虛, 上下无常 剛柔相易 不可爲典要 唯變所適) 속에 등장하는 말이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변화의 원리는 막다른 곳에 이르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 지속된다. 변화라는 것은 나아가고 물러나는 모습이니 변하고 움직여서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우주 만물에 두루 흘러다닌다. 그리고 위와 아래가 일정하지 않고 강함과 부드러움이 서로 바뀌므로 고정된 법도나 요점으로 삼을 수 없으니 오직 변화가 이끄는 바에 적응할 뿐이다.”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잠시도 멈추지 않고 변화를 겪은 한해를 표현한 말인데, 주역 자체가 변화무쌍한 우주의 원리를 괘로 풀어냈기 때문에 이 말은 올해가 아니어도 내년에도 통하고 그 다음에도 통하는 말이 된다.
주역에서 말하는 변화무쌍(변동불거)는 6개의 효(六爻)가 6개의 위(六位)를 순서를 정하지 않고 약함과 강함이 서로 바뀌면서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6위(六位) 는 건괘의 각 효(爻)가 하늘의 도(道)를 실현하는 자리로, 각 효는 변화의 단계와 덕목을 상징한다. 여기에 잠룡, 현룡, 비룡, 항룡이 등장한다.
용(龍)의 변화를 가지고 만물과 인간세계의 변화를 빗댄 것이다.
잠룡(潛龍)은 물에 잠겨 있는 용을 말하는데 양수 가득한 어미의 자궁 속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용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지만 정확하게 말한다면 아직 용이 아니다
현룡(見龍)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된 상태를 말하는데 청소년기의 용이라 할 수 있다.
비룡(飛龍)은 드디어 하늘로 날아올라 최고의 경지에 오른 용의 모습이다. 이제 진짜 용이 된 것이다.
마지막 용은 항룡(亢龍)이다. 너무 지나치게 높게 올라간 용을 말하는데 이제 떨어질 일만 남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용을 말한다. 주역에서는 ‘항룡유회(亢龍有悔)’, 즉 ‘너무 높이 올라간 용은 후회하게 된다’라고 풀이한다. 주역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
주역을 통해 길게 말을 했지만 간단히 ‘화무실일홍’ ‘권불십년’과 다르지 않은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세상 가장 높은 곳에서 모두를 내려다보니 듣지 않고 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내려갈 일만 남은 처지를 빨리 깨달아 높이를 조절하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 아닐까 한다.
이미 물속에서 꿈틀대기 시작한 잠룡들이 있고, 눈에 보이는 용들과 날아오르는 용들이 있는데 자신이 가장 높이 올랐다는 자만심으로 더 높은 곳을 넘보다 추락하고 만다는 경고의 메시지라고 할 수 있다.
입법, 행정, 사법의 균형을 깨고 그 위에 우뚝 군림하다 보면 바로 항룡이 될 수 있고, 국회의원이라는 치외법권적 권한을 남발하다가도 그렇게 될 수 있다. 여러 스타 연예인들 역시 다르지 않고, 세계 최고의 기술을 가진 기업도 마찬가지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그랬듯이 트럼프 대통령도 그럴 수 있고 이재명 대통령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 ‘변동불거’의 숨겨진 뜻 아닐까? 그런 의미가 숨겨진 올해의 사자성어인 것 같아서 무게감이 느껴진다.
‘변동불거(變動不居)’가 ‘망동불가(妄動不可)’로 읽혀진다.
이기영, 편집국장